<호련의 빨강 토마토 메일 103. 옷의 원가와 반고흐의 그림, 그리고 당신은 얼마입니까>

#1. 옷가게 알바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옷가게 알바 이야기’로 메일을 시작합니다. 예전에도 몇번 옷가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옷가게 점원은 제가 대학에 입학한 뒤 했던 첫 알바로 방학 때는 매일, 학기 중에는 주말마다 출근을 했답니다. 옷가게는 지하상가에 있는 굉장히 작은 가게였는데, 처음에는 직원도 저뿐이라 사장님과 단 둘이 일을 했습니다.

옷가게 사장님은 이전에는 스포츠용품 회사 FILA에 계시다가 막 창업을 한 분으로 제가 첫 알바생이었습니다. 호련은 옷가게가 열린 후 2주째부터 일을 시작했죠. 사장님은 훗날 채용 뒷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직원공고’를 붙인 뒤 여러 사람들이 알바 면접을 보러 왔는데 그 중에는 ‘의상학과’ 학생도 있었다지 뭐에요. 그 말을 듣고 황당한 저는 옷가게인데 이왕이면 의상학과 학생을 뽑아야지, 저 같은 인문학부생을 채용했냐고 여쭤보니, 면접보러 온 사람 중 제가 가장 힘도 세고 체력도 좋아 보였다는군요. (-_-)

초짜 옷가게 사장님과 초짜 알바생이 만나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었을지 상상이 되시나요?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고 신경쓸 것이 상당했습니다. 하나뿐인 전신거울 관리와 가게에 카세트를 두고 음악을 트는 것 등..(초기에는 BOA앨범 CD 두장만 두달을 들어야 했죠) 다행히 사장님의 수완이 훌륭하여 장사는 꽤 잘되었고 나중에는 혹시 주변 상가들이 질투할까 눈치도 볼 정도였는데요. 덕분에 제 시급은 몇달만에 두배 이상 뛰고, 사장님은 매일 상당한 양의 간식과 식사를 사주셨습니다. (제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보람이 느껴진다고 하시더군요) 일손이 바빠져 새로운 알바생도 들어오고, 추석 전날에도 일하느라 부모님이 절 보러 옷가게를 찾아 오시기도 했습니다. 

옷가게에서는 2년 가량 일을 했는데 재미도 있고 배운 것이 참 많았습니다. 매일 어떻게 하면 재고를 팔아 치울까 고민을 하며 디스플레이를 연구하고 사장님이 가져오신 신제품의 원가를 맞추는 놀이도 했죠. 처음에는 인사도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제법 붙임성도 생기더군요. (이런 옷은 아무에게나 권하지는 않는데 손님 정도의 몸매시면..) 하마터면 꿈이 옷가게 사장이 될뻔 할 정도로 즐거워습니다. (물론 기회가 되면 나중에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하네요)

점심 식사 후 산책 중, 잠실 석촌동

점심 식사 후 산책 중, 잠실 석촌동


#2. 원가와 가격의 비밀

옷가게에서 있었던 일 중에 원가 맞추기 놀이가 꽤 인상에 남습니다. 새로온 옷의 원단이나 박음새를 보며 대략 얼마 정도에 사왔는지를 맞추고 얼마에 팔면 되겠다는 걸 판단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이것을 대충 가늠할 뿐이지 정확히 맞추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떤 유통경로를 거치느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므로 종종 품질이 떨어지는 옷이 오히려 비싸게 들어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것은 비단 옷 뿐만이 아니라 모든 물건에 해당되죠. 언제 어떤 경로를 거쳐 어느 시점에 판매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상당히 달라지죠. 때로는 대형마트보다 일반 소매점에서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오뚜기 영업사원 시절, 시장조사로 마트를 일천여 곳 가량 방문했는데, 종종 몇십미터 거리에서 같은 물건을 두세배씩 차이나는 가격으로 파는 경우를 목격할 수 있었죠.

언뜻 생각하면 파는 사람은 제조원가의 약 몇% 정도의 이윤만 붙여 팔아야 상도덕에 맞을 것 같은데 이상하진 않나요? 물론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경제학의 원리 쯤은 익히 알더라도 말이죠.

얼마 전 한 업체에서 호련이네 회사로 ‘사진구입'을 의뢰했습니다. 그곳에서 원한 사진 중에는 호련이 찍은 것도 있었는데요. 요즘 사진 연습을 열심히한 저는 그 소식에 상당히 기분이 좋았답니다. 만일 이때 사진의 원가를 따져 팔았다면 얼마가 적당했을까요. 많은 이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최고로 치며, 반고흐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아무도 그 그림들을 캔버스와 물감 원가를 따져 가격을 책정하지는 않죠.

호련 폴라로이드 사진, 그리고 빨간 케이스의 아이폰

호련 폴라로이드 사진, 그리고 빨간 케이스의 아이폰


#3. 가치측정의 기준

반고흐의 전시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해바라기 정물화가 어찌나 이글이글하던지 마치 그림에서 열기가 나는 것 같더군요. 멋진 작품을 보고 감탄하며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반고흐는 죽기 전까지 879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남에게 자신의 그림을 판 것은  ‘붉은 포도밭’이라는 작품 한 점 뿐이었답니다. 그의 그림 중 유독 자화상이 많은 이유는 돈이 없어 모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대요.

<반고흐, '붉은 포도밭' Red Vineyard, Oil on canvas, 75.0 x 93.0 cm, Arles: November, 1888  Pushkin Museum, Moscow>

훌륭한 예술작품과 우수한 제품도 때와 장소가 맞지 않으면 판매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하기 위해 좋은 ‘사업아이템’을 찾아 나섭니다. 물론 유망하거나 획기적인 상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그 물건이 팔릴 만한 ‘시장환경’을 찾아야 하는데요. 물론 수완좋은 영업인이라면 아프리카에서도 모피코트나 어그부츠를 팔 수 있겠지만, 이왕이면 추운 곳에서 파는  것이 더 쉽겠죠? 또 사람들은 더 맛있는 햄버거와 커피를 파는 곳이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가까운 맥도널드나 스타벅스를 더 자주 찾기도 합니다.

선배님들이 종종 사오시는 모닝 커피를 잘 얻어 먹는 호련 ^0^

선배님들이 종종 사오시는 모닝 커피를 잘 얻어 먹는 호련 ^0^


#4.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

그렇다면 물건이나 음식, 예술작품이 아니라 ‘사람’은 어떨까요. 여러 학생들이 취업난에 고생이 많습니다. 취업을 위해 다양한 방법도 쓰며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또 자신보다 부족해 보이는 스펙으로 좋은 기업에 들어간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호련도 대학생 때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왜 내가 떨어진 것일까, 무엇이 부족할까’ 하며 밤잠을 설친 일이 있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비하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훌륭한 예술작품’이지만 그것을 소화할만한 시장환경 속에 있지 못한 건 아닐까요? 마치 반고흐의 생전 팔리지 못한 878점의 그림처럼 말이죠. 소중한 우리를 물건에 비유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원가율을 높이듯 ‘스펙’ 쌓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리를 원하는 시장환경을 조사하고 거기에 맞춰 포지셔닝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호련처럼 옷가게에서 의상학과 학생을 제치고 ‘체력이 좋아보이는 이유’로 뽑혔던 것처럼요.

이것은 구직 중인 학생들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혹시 회사원 분들,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연봉’이나 숫자로 따지는 오류를 범하시지는 않나요? 우리의 가치는 외부의 평가를 기준으로 판단될 수 없는 것이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얼마든지 변하기 마련이랍니다. 반고흐가 자부심을 갖고 그림을 꾸준히 그린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가치를 믿고 현재를 살도록 합시다. 타인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되 가장 관심을 가져야할 것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쑤시개가 야구방망이를 보고 말했다.
그 몰골로 누구의 이빨을 쑤시겠니. 쓸모없는 놈.

 -이외수 <하악하악>


호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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