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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심청가는 참 이상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심청가는 분명 효를 이야기 하는 것인데 사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조선시대에 굉장히 큰 죄악으로 여겨지지 않았었는가. 그런데 아버지의 눈을 위해 죽는 것을 어째서 그렇게 굉장한 효로 내세우는지 의문이다. 나라면 차라리 수양딸로 가서 먼 발치에서라도 아버지를 살피고 살아서 잘 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더 큰 효라고 생각한다. 또한 인당수에 빠트리기 위해 처녀를 사는 풍습이 있는 것도 생각해보면 정말 희한한 일이다. 그렇게 돈을 주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다니, 이번에 심청가를 제대로 읽으면서 많은 의문점을 품게 되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러하다.

우물가 두레박소리, 얼른 듣고 나갈적에, 한품에 아이를 안고, 한손에 지팽이, 흩어 집고, 더듬 더듬 더듬 더듬. 우물가에 찾아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초칠안에 어미 잃고, 기허하며 죽게 되니, 이에 젖좀 먹여주오. 듣고 보는 부인들이, 철석인들 아니 주며, 도척인들 아니주랴

어릴 적에 심청전을 읽을 때는 심봉사가 젖동냥을 하러 다녔다는 부분에서 남자가 젖동냥을 하러 다녔다니 참 우습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원전을 읽어보니 어찌나 비통한지, 가슴이 찡했다. 성한 사람도 아기 기르기 힘들다고 불평하는데 장님의 눈으로 갓난아기 키우기가 오죽했을까. 게다가 자기 밥도 챙기기 힘들었을터에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젖동냥하며 기어이 살겠다고 나서는 심학규의 모습이 아주 절절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키웠더니 심청이는 자기 목숨 내던지고..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터에 더욱 안타까웠던 장면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이러하다.

이때의 심황후는 맹인 잔치를 열어 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부친이 아니 들어오니..

나는 어째서 심청이는 심학규가 여전히 맹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심학규의 눈을 뜨게하기 위해서 공양미 삼천석과 자신의 몸을 바꾼 것이 아닌가. 그렇게 깊은 불심이 있어서 자신의 몸을 버릴 정도라면, 당연히 아버지가 눈을 떴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야 했지 않을까? 그런 깊은 믿음도 없이 눈먼 아버지를 버리고 죽어버리는 것이 정말 효였을까? 이런 것은 너무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심청가 전체에 어떤 리듬감이 있어서 읽으면서 괜히 흥겨웠다. 열녀지 열녀야 백녀라네 하며 언어유희가 쓰이는 것도 좋았다. 어릴 적에는 심청이의 입장에서 그녀의 불쌍한 처지에 가슴 아팠었다.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하다니 참 불쌍하다 라는 심리로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어보니 심학규의 처절하게 슬퍼하는 모습이 가슴에 와닿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심지어 나는 심청이가 우울증에라도 걸려서 살기 싫어서 수양딸도 버리고 죽는 길을 택한게 아닌가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힘없는 아버지를 버려두고 죽어버리는게, 과연 효였을까? 눈을 뜨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변명을 하지만, 결국 그녀는 맹인잔치를 열어서 아버지가 눈을 못 떴을 거라고 자신이 생각했었던 것을 증명해냈다. 가슴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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