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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를 만났다.

평범한 외모에 짧고 검은머리. 흰 남방을 단정히 입고 남색 면바지에 회색 더플 코트를 입고 있는..

여하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내가 기억하는 이유.

책 때문이다.

'바람 노래의 비밀'

지극히 평범해서 옆을 스쳐지나간다 해도 관심 없었을 사람.

그 사람이 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때에서야 나는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게 됐다.

M. J라는 이니셜의 작가가 쓴 20권의 장편소설.


한때 내가 무척 좋아하던 그 책.

하루종일 그 책을 읽으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화도 내며

때때로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 책.

내 삶을 많이 바꾸어 버린 그 소설을 그 사람이 읽고 있었다.

'아마 저 사람이 저 책을 읽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영영 저 사람의 존재를 몰랐을 거야.'

나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했는지, 속으로 이야기한 건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삼일 전 처음으로 그가 1권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아직도 표지는 보아하니 1권 그대로이다.

나는 삼일 전부터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학교를 갈 때나 집에 갈 때나 그 사람을 삼일 동안 모두 다 보았다.

그러니까 여섯 번을 만난 셈이다.

 

'우연인가?'

나는 시큰둥하다는 식의 표정을 하고서 그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 자리는 전철 문 바로 옆이었다. 왼팔을 난간에 올린 채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반대편 오른쪽 끝줄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무척 평온해 보이는 얼굴...


"이번 역은 노원, 노원 역입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터진 모래주머니에서 모래가 흘러나오듯 와르륵 들어온다. 그 사람의 모습이 점점 가려진다.


"바람 노래의 비밀...."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나는 노을이 좋아"

소녀는 말했다.

"누가 하늘이 푸르다고 말했지?, 저것 봐. 저렇게 빨간 걸~!!"

소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양 팔을 위 아래로 휘휘 저었다. 언덕에서 본 노을 속에 소녀의 분홍 치마가 나풀거렸다.

 

" 이렇게 훨훨 날아서 노을 속으로 들어갔으면.."

소녀는 뒷말을 흘리며 온 몸에 힘이 빠진 듯 팔을 축 늘어트렸다.

아마 그런 팔짓으로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독수리가 우울증에 걸려버렸을 거라고 딜칸은 생각했다.

"노을이 되고 싶어?"

와삭

딜칸은 사과를 먹으며 말했다.

"노을이 되면 너는 두 번 다시 노을을 볼 수 없을 거야."


소녀는 뒤를 돌아 딜칸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할 듯 소녀의 입이 우물거렸다.

"내가..노을이 되면..."


소녀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우물거린다. 자신의 옷자락을 꽉 쥔다.

노을에 비친 분홍 옷자락이 한층 더 붉어 보인다.


딜칸은 먹던 사과를 던져버렸다.

데구루루....

석양을 비추는 언덕 아래로 먹다 만 빨간 사과가 구른다.


" 가자 쟌. 이제 해가 질 거야"

딜칸은 일어나면서 옷에 묻은 지푸라기를 털며 말했다.

" 내일 또 올게 "

시무룩해하던 쟌이라고 불린 소녀는 그제야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 으응.."


두 소년 소녀는 손을 잡고 언덕을 내려갔다.

딜칸이 들으면 기절했겠지만 쟌은 이대로라면 언덕에 굴러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스르륵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 바람 노래의 비밀> 1권 72쪽 M. j지음




 


엄청 방대한 스케일을 가졌던 <바람노래 이야기>
너무 큰 스케일에 작가가 압도당해버린 ㅇㅅㅇ~ㅋㅋㅋㅋ

계속 현실세계이야기와 <바람노래의 비밀>책의 내용이 겹쳐서 나오는 스토리다.

2002년 12월 26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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