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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토끼가 있었습니다. '봉고'라는 이름을 가진 암컷 토끼입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의 토끼입니다.
귀는 크고 눈은 동글동글하고 털은 매우 부드러운 그런 지극히 토끼스러운 토끼가 있었습니다.


토끼는 건포도와 청경채를 좋아했고 건초를 즐겨 먹었습니다. 
가끔 성격이 매우 난폭하기도 하고 화를 잘 내서 자칫하면 손등을 물리기 쉽상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외로움을 잘 타는 토끼였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킁킁 소리를 내며 사람 주위를 돌며 놀아달라고 졸랐습니다.
일부러 발을 밟고 다리를 살짝 깨물며 쓰다듬어 달라고 애교를 부렸습니다.

안고 있으면 금세 잠이 드는 태평한 성격의 토끼였습니다.
품은 매우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 때문에 기분이 참 좋아지는 그런 토끼였습니다.


굴을 파는 것을 좋아하지만 집 주변에 굴을 팔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자꾸만 침대 위를 올라가고 싶어하는 토끼였습니다.


토끼는 참 이상했습니다. 종이도 뜯어 먹고 전선줄도 갉아 먹으려고 해 여간 고생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붓글씨를 쓰고 있으면 매우 신나하며 화선지를 뜯어 먹고 신나게 놀던 토끼였습니다.


함께 사는 고양이와 함께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늘 가까이 가면 고양이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그런 토끼였습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고양이와 토끼가 서로를 의지하며 잠을 잘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동안 참 여러 토끼를 길렀습니다.
가을이, 겨울이, 초코, 카스테라.. 그러나 가족들의 성화에 언제나 조금 커지면 친척네로 보내졌기에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한 토끼는 처음이었습니다.
일곱 살 난 토끼였지만 앞으로 몇 년은 거뜬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냥 잠시 몸이 아픈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은 살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며칠은 더 견뎌줄 줄 알았습니다.


참 흔한 보통의 토끼가 있었습니다.
먹성이 좋아 이것저것 잘 먹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비가 내리면 멍청하게 내리는 비를 맞고 앓는 그런 토끼였습니다.
분수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는 것을 즐기는 토끼였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지 채 얼마 되지 않은 그날....
토끼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물도 몇 모금 핥다 말았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벌러덩하고 방바닥에 눕던 그 토끼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방 한 가운데서 애써 감기는 눈을 뜨고 앉아 있곤 하던 토끼는..
그날따라 유난히 몸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포동포동하던 몸은 순식간에 앙상하게 뼈가 드러났습니다.
겨우 벅찬 숨을 쉬던 토끼는 동생의 곁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애써 토끼의 뜬 눈을 감겨주려고 했지만 감겨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토끼의 몸은 온기가 꽤 따스했기에,
토끼의 털은 여느때처럼 매우 부드러웠기에...
흔들어 깨우면 당장이라도 일어나 청경채와 건포도를 신나게 먹을 것 같았기에..

토끼 봉고가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신 나게 뛰어놀기를,
새로운 주인을 만나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마음껏 굴을 파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갉아 먹기를..

동생이 그린 봉고 그림


참 흔한 토끼가 우리와 함께 살았습니다.
이제 고마운 그 토끼에게 인사합니다.

봉고가 있어서 참 행복했다고. 곁에 있어주어서 무척 고마웠다고.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 미처 마음의 준비를 못해서 얄미웠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안아줄 걸 그랬다고...
더 쓰다듬어줄 걸 그랬다고..
말썽을 피울 때 덜 구박할 걸 그랬다고..
예쁜 사진을 더 찍어줄 걸 그랬다고....



안녕, 봉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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